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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독후의 감

「어둠의 왼손」, 어슐러 K.르 귄

by ABCD 202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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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 어슐러 K.르 귄

- 케메르 : 빛과 어둠의 관계. 고립되어 있지만 단절되어 있지는 않은. -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아무리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 하더라도 읽다 보면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를 믿는 상태에서 책을 덮게 되는 이야기. 작가가 나를 상상해 본 적 없는 세상으로 데려다 놓았는데, 그 속에서 내가 소설 밖의 나 사이에서 혼란을 겪지 않는 이야기.

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생각은 이기호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 수록된 단편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을 읽고 나서부터 들었나보다. 그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정말 밥 대신 흙을 넣은 야채볶음흙이라는 요리를 먹어도 되는 것이고, 심지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지금도 살짝 헷갈린다는게 더 어이없다. 물론 내가 흙을 먹을 의향은 없다. 하지만 만약 다시 그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나는 또 한번 설득당할 것이 분명하다.

 

어둠의 왼손이 그랬다. "겨울"이라 불리는 외계행성 게센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둘 다 아니면서 둘 다이기도 한 인류가 살고 있다고 나는 믿었다. 겐리 아이는 에스트라벤을 추억하며 에큐멘과 다른 인류와의 교류를 위해 평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책을 덮었다. 나는 시가 행진과 눈보라를 겐리의 옆에서 함께 보았고, 어느샌가 소설 밖의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진리는 상상의 문제(p.25)"이기 때문인걸까?

 

게센인은 겐리를 보고 "섬뜩하리만큼 외로운 존재"(p.320)라고 한다. 그런 그에게 답한다. "당신은 고립되어 있지만 단절되어 있진 않군요"(p.321). 고립되어 있지만 단절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오르고레인의 창조 신화에서도 묘사된 바 있다. 에돈두라스의 아이들은 시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둠조각(그림자)이 이들을 따라 다니고, 이들이 죽는 날에는 태양이 자신을 잡아먹고 그림자는 빛을 먹는다. 삶은 죽음에서 나와 죽음으로 들어간다. 어둠은 곧 빛이며, 삶과 죽음은 그 선후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게센인들은 타인을 남자나 여자로 보지 않는다. 각자는 오직 하나의 인격체로만 존중되고 판단된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경험이다"(p.144). 나로부터 나의 성을 분리해내고 나면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나의 성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며, 나의 성이 아니고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내가 나 자신과 바깥 세상을 해석할 때 이미 "나의 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이를 제대로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나로부터 나의 성을 분리해낸 상태를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성에 의한 해석이 반영되었다는 의미이다. 나의 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인 나를 설명하라는 것은, 마치 누가 나에게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는데 내가 '생각을 멈추자'는 생각을 하면서 '난 죽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느낌이다. 정말 "소름끼치는 경험"이자 "섬뜩한 외로움"일 수 있겠다.

 

나는 그 가능성을 오직 게센인들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통해 가늠해 볼 뿐이다. 게센의 사회는 이원론 경향의 정도가 낮거나 둔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일상적 기능에 있어서나 지속성에 있어 성이 없다. 오히려 게센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성이나 다른 인간적인 요소가 아니라 환경, 추운 세계이다. 모든 이가 선택에 대한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으며, 누구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p. 142~146) 게센에서 성이란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의 특정한 성은 특권이 될 수 없다. 이는 내가 사는 현실과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이 곳 겨울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남자아이야, 여자아이야?"일 수 없다.

 

이원론에 기대는 것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나와 세상, 현상과 원인 따위를 설명하기 위해 부지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보호적/피보호적, 지배적/순종적, 주인/노예, 능동적/수동적 따위의 구분에 익숙한 지구인인 나는 (그래서 상상이) 불가능한 세계와 인류를 만나보았다. 그 생경함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소설 밖의 나는 이 이야기의 정합성에 대해 거의 의심하지 않았다. 르 귄은 "소설가의 본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서문을 열었지만, 오히려 나는 때때로 겐리와 함께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어둠의 왼손」은 좋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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